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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of Universe 님의 블로그
04.참된 영적 지도자가 가져야 할 마음(롬 1:8-10) 본문
(본문: 롬 1:8-10)
8.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I.서론
바울은 본서를 제3차 전도 여행 기간 중인 A.D. 57년경 고린도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이때는 바울이 로마를 아직 방문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당시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는 계획과 열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로마서 1장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불신자들을 연상하게 됩니다. 로마서 15장 20절을 보면 바울도 같은 생각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같이 내가 복음을 선포하고자 애써 왔으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 KJV).
복음이란 대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니만큼, 거의 대부분이 믿지 않는 당시 상황에서 굳이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 복음을 또다시 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자신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로마의 성도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을까요?
먼저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시간에 이미 다루었는데요. 로마서 1장 6-7절을 보면 로마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이미 성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1장 8절에 보면 “그들의 믿음이 세상에 두루 전하여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좋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들에게 왜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는지 참 의아해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는지는 롬 1:10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롬1:10, KJV).
또한 1:11절에서는 “너희를 간절히 보기를 원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로마교인들을 너무 보고 싶어 하는 심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1장 13절에서는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길이 막혔도다”(롬 1:13, KJV)라고 하며 한 번만 노력한 것이 아닌 기회만 있으면 로마교회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아주 많이 노력했음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그래서 로마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바울이 왜 그토록 로마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을까?”하는 난제를 놓고 여러가지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학설을 12가지나 됩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중 첫번째는 바울이 예방적인 의도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만 해도 로마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바로 은혜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당시 대부분의 초대교회가 겪었던 것처럼 교회 안에 침투한 이단의 영향으로 탈선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릇된 복음에 빠지지 않게 예방하려고 다시 한번 복음전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견해는 바울이 유언을 남기려는 의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유언이란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한 다음에 부득이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아는 바와 같이 그 당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가 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사도행전 20:22-24에서는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만일 그곳에 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로마에 갈 기회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언하는 심정으로 이 로마서를 기록하여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전략적인 의도로 그랬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도시였습니다.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지 않고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서바나(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 로마는 중요한 전략 목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기 앞서 미리 로마서를 통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훗날 로마에 갔을 때 선교하기가 훨씬 더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준비 작업으로 이 서신을 썼다는 것입니다.
앞의 세가지 견해가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바울이 목회적 의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보여집니다.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의도적으로 복음을 한 번 더 전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교회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적어도 2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교회였다고 추측이 됩니다. 로마 교회는 오순절 날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목도하고 귀환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나 그곳에는 아직 사도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바른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율법주의적 신앙을 따르거나 반대로 복음의 진리를 오해한 나머지 방종한 생활에 빠진 성도들이 허다하였습니다. 또한 로마교회는 오래 되었으므로 첫 믿음의 순수성과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이며, 이렇게 가정하는 것은 절대로 지나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3:13-14에 보면 바울이 아주 엄격하게 경고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낮에 하듯이 우리가 정직하게 걷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침실에서의 문란함과 방탕에 빠지지 말고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자. 오히려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롬 13:13-14, KJV).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드나들고는 있지만 무엇인가 잘못된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을 다시 듣고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저는 바울이 영적으로 힘을 잃어가는 그들에게 로마서를 통해서 다시 한번 복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간절한 소원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II.본론
바울은 로마서 1:8-15에서 로마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소원과 목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여기에서 참된 영적 지도자의 8가지 표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8절), 관심을 기울이는 마음(9절), 자발적이고 복종하는 마음(10절), 사랑하는 마음(11절), 겸손한 마음(12절), 열매 맺는 마음(13절), 순종하는 마음(14절), 간절한 마음(15절)입니다. 오늘은 이중에서 앞의 세 부분, 즉 감사하는 마음, 관심을 기울이는 마음, 자발적이고 복종하는 마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감사하는 마음 (롬 1:8)
참된 영적 섬김의 첫째 표식은 감사입니다. 롬 1:8절입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1:8). 바울은 로마교회의 신자들에게 먼저 감사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하신 일과 자신을 통해서 하신 일에 감사했을 뿐아니라, 하나님이 다른 신자들 안에서 하신 일과 그들을 통해서 하신 일에도 감사했습니다.
바울의 감사가 친밀했던 첫째 이유는 그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웠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심령으로 마음과 생각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그가 보낸 여러 서신서에서도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1:4), 에베소서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1:16),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1:3), 골로새서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니”(1:3)하고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감사가 친밀했던 두번째 이유는 그가 동료 신자들, 심지어 로마 신자들과도 영적으로 친밀했기 때문인데, 바울은 이들의 대다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은 로마의 모든 신자에 관해서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감사는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포함했으며 차별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당시 고린도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행20:3).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는 길이었으며, 예루살렘에 가면 감옥에 갇히고 죽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서신에는 감사가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몇 년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셋집에 거주하며 황제 앞에서 심문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서신 넷을 썼는데 이것이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이 서신들을 흔히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각 서신에서도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신을 받는 신자들에 대해서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감사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의 믿음이었는데, 이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주후 49년 클라디우스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크레투스(Chrestus, Christ의 다른 표기)의 추총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크게 자극해 일어난 소요가 로마 전체의 평화를 위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그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기 때문입니다(요삼 1:3,4). 우리는 여기서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믿음에 관한 소문이 각처로 퍼져나갔다는 것은 그들이 신실한 사람들이었음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바울도 이들에 대해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서로에게 권면하는 자”(롬 15:14)라고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소문이 퍼진 범위를 “온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자적으로는 “온 세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온 세계”(the whole world)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로마 제국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아마 이는 로마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아마 계속적으로 꾸준하게 번져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과장법적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당시 제국의 수도였고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던 곳이었으므로 로마에 전파된 그리스도교 복음과 더불어 로마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당시 로마 제국 곳곳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타락할 대로 타락한 정치, 경제,사회, 문화의 중심지에서 박해와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묵묵히 감내하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어 그 믿음에 대한 소문들이 빠르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그들은 확실히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의 목적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게 되는 법입니다.
2.관심을 기울이는 마음(롬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1:9).
참된 영적 섬김의 두번째 표식은 관심을 기울이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여기서 제시할 뿐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본을 보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면서까지 본 서신을 통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밝히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가고자 애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로마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그의 쉬지 않는 기도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바쁘고 힘든 일정 중에도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다른 것에 결코 양보하지 않았습니다(살전 5:17). 그가 그토록 열심으로 기도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것은 로마 교회와 그 성도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혹자는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 관한 기도의 목록을 적어 그것을 가지고 날마다 기도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기도할 때마다 누군가를 잊지 않고 언급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특별함을 나타냅니다. 그가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은 로마 교회이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성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그들과의 영적 유대감을 키워 나갔던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도로 교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류는 없습니다. 이는 성령을 통한 교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아낌없이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으로 표현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전부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그 시작은 그의 심령(spirit), 곧 그의 영혼에서 넘쳐나는 깊은 갈망이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섬길 때 최우선은 “그의 아들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이 사역에 부르셨고 바울은 이 사역에 삶을 송두리째 바쳤습니다. 하나님을 섬김에는 복음을 믿은 “모두”에게 깊고 친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관심을 쏟은 것은 이들이 “그의 회심자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과 이들이 같은 하나님의 아들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같은 영적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항상 자신의 기도에 로마성도들을 포함했으며 자신의 기도목록에서도 절대로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항상 자신의 기도에 쉬지 않고 이들을 말하는 사실을 증언할 대상으로 자신의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바울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슨 간구를 했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서신들에서 언급한 간구와 비슷하리라 추정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대부분의 편지에서 이들이 성령으로 강건해지고 그리스도께서 이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이들이 그분의 진리를 온전히 깨달아 그분을 닮기를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깊고 깊은 기도입니까? 여러 서신서를 보면, 바울의 모든 기도 내용은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신자들 개개인을 위해 기도했을 뿐 아니라 많은 신자그룹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신자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지기를 기도했고,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게 되기를 기도했으며,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순종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깊이와 강도가 관심의 깊이와 강도인 것입니다.
3.자발적이고 복종하는 마음(롬 1: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1:10).
바울은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 가서 복은 전하기를 갈망했습니다. 13절에서도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 1:1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듯 로마교회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오래 기도했습니다. 로마교회 신자들을 섬기고 이들의 섬김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11-12절).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안에서” 그렇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바울의 열망을 이끌었던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열광과 통찰이 아니라 자신이 섬기는 분의 뜻에 따라 섬겼습니다.
아가보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는 위험을 예언했을 때, 친구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이 말에 누가를 비롯해 여러 사람도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며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행21:13-14)라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더 환히 드러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수수방관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도하셔서, 가장 좋은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 동안 기다리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결코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이 보이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실제 문제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기도하다가 낙망하기도 하고, 응답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로마행이 어떤 모양으로 가로막혀 있었을까요? 롬 15:22절 이하의 말씀은 이에 대한 빛을 비춰줍니다.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서 일할 곳이 없고”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도 바울이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복음전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지금으로 말하면 유럽지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유럽지역을 복음화하시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10)하고 말씀하신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의 문이 열려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서둘러 로마로 달려간다는 것은 그의 심령이 허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행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토록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내세울 만큼 우둔한 종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0장에서 성도들이 그토록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그는 체포되었으며,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23:11)하고, 드디어 로마행을 허락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토록 소망했던 로마에 가게 되었으니 그가 바라던 때에, 그가 바라던 모습으로가 아니라,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모습으로 가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행전 27:24절은 말씀합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시저)와 문무백관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를 기록하여 후대에 전해주시려는 뜻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로마에 가는 것을 바울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허락을 하셨다면, 로마서는 기록이 되지 않았을 것이요, 우리는 영광스러움으로 가득 찬 로마서를 갖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혼잡하고 변질이 될 것을 아시고, 바울로 하여금 로마서를 기록케 하셔서 그 시대 시대마다 복음을 보수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입니다.
III.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1장 8-10절을 통해 사도 바울의 감사와 중보기도의 본을 보았습니다. 그는 로마 교회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고 있음을 감사하며, 멈추지 않는 기도로 그들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행하시는 모든 일을 돌아볼 때, 감사의 제목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숨을 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됩니다. 특별히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믿음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본다면 더욱 감사의 고백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간구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필요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중보기도는 믿음의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우는 힘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우리는 바울의 감사와 기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더 큰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처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10)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끝맺으면서도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로 나아가게”(15:32) 해달라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시작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요, 끝도 “하나님의 뜻대로”였습니다. 우리도 그러하기를 사모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뜻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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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참된 영적 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2)(롬 1:11-15) (1) | 2025.01.31 |
03.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롬 1:5-7) (1) | 2025.01.31 |
02.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롬 1:1-4) (2) | 2025.01.31 |
0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롬 1:1) (2) | 2025.01.31 |